1. 책가도(책거리)는 주인의 취향을 말하는 그림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는 책장 가득 음반을 쌓아두고, 피규어을 좋아하는 이는 책장 가득 수집품을 전시하듯, 과거에 살았던 어떤 이들이 취향을 책장 가득 쌓아둔 것이다. 책을 유난히 사랑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 정조는 어좌 뒤에 해와 달이 그려진 그림 '일월도'를 '책가도'로 대신하기도 했는데, 왕의 이런 관심 덕에 책가도는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도 크게 유행하여 200여 년간 인기가 이어졌다고 한다.

2. 동화적 요소가 가득한 동양의 유토피아, 불사의 선계가 궁금하다면 십장생도를 찾으면 된다. 온갖 화려하고 초현실적인 스토리의 집약체로, 한 그림 안에 갖가지 주인공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말 그대로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한’ 그림이다. 달, 사슴, 소나무, 불로초 등 장수와 무한의 의미를 지닌 신비한 존재들이 주로 그 대상이 된다. 십장생도(十長生圖)는 10개의 장생물이 나오는 그림이라는 뜻이지만, 이름은 상징적인 의미이고 사실은 그보다 많거나 적은 대상이 등장한다.

3. 책가도와 십장생도. 우리는 한국의 판타지를 대표하는 이 두 회화를 좋아한다. 각각이 가지는 상징성도 충분히 재밌지만, 무엇보다 욕망에 충실한 상상의 그림,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 자유로움이 가장 좋다. 직접적이지 않아 더 우아하고, 원하는 만큼 상상할 수 있어 더 즐겁다.